브랜드 디자이너가 인스타그램을 잡은 이유
- Michelle Lee

- Aug 31
- 6 min read
Updated: Oct 5

스타트업에 있다 보면 경계가 모호한 영역을 자연스럽게 맡게 된다. 아직 집중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나 채널의 도입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디자이너가 먼저 시각적으로 판을 깔고 흐름을 만드는 일을 경험한 적이 종종 있다.
조직의 공백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당장 없어도 불편을 못 느끼던’ 브랜딩 맥락의 빈틈을 그 분야를 맡은 사람이 수면 위로 올리고, 방향을 설득력 있게 증명하기 위해 기꺼이 앞장서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선점해야 했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내가 브랜딩 팀 리드를 맡았을 때, 오피지지는 사업적으로 ‘리그오브레전드 전적’에서 ‘게임 문화’로의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 지점에서 내가 정의한 브랜딩의 미션은 명확했다.
“전적 데이터 중심 이미지를 넘어, 게이머가 공감하고 머무는 공간으로 정체성을 확장한다.”
이에 따라 브랜딩 팀은 리브랜딩을 통해 Gamers Universe를 선언하고, 게임 플레이 속 상황을 유쾌하게 표현하는 캐릭터 IP 개발 등 여러 실험을 체계적으로 이어갔다. 단순한 정보 제공자를 넘어, 커뮤니티적 체류를 이끄는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문제는 이 메시지를 생활 언어로 전할 채널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지원 조직인 브랜딩 팀은 특정 채널의 업데이트 니즈가 분명해지기 전까지 선제적으로 개선을 제안하기가 쉽지 않았다.
SNS는 가볍고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만큼, 브랜드 보이스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채널이다. 다만 투입 인력 대비 매출 직결 성과 연결이 쉽지 않아 집중 투자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기존의 기능 업데이트 안내 위주의 운영만으로는 지향점을 보여주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개편을 직접 제안하고 실행에 들어갔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게임 유머·뉴스 매거진’으로 정의하고, 초기에는 기획부터 제작까지 스스로 맡아 방향을 증명하기로 했다.


이제 게임 매거진입니다
핵심 포맷은 둘로 단순화했다.
게이머 공감 릴스/밈: 격이 없고 러프한 기조의 유머 컨텐츠
게임 뉴스: 이스포츠와 게임 산업의 핫이슈를 빠르게 요약, 큐레이션
보이스 또한 채널에 맞게 날을 갈았다. 오피지지가 “센스와 감이 있는 게임 플레이어”로 보이게 한다. 즉, 관찰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태도를 계속 증명한다.
목표 설정: 1만부터 증명한다
당시 팔로워는 6천 명대였다. 나는 오피셜 계정이라면 최소 1만 팔로워는 되어야 공식 채널의 신뢰와 발화력이 생긴다고 판단했다. 알고리즘 노출 확률과 참여율도 그 지점부터 가파르게 오른다고 봤다. 그래서 단기 목표를 ‘1만 달성’으로 두고 가능성을 먼저 증명하고자 했다. 이후에는 채널 신뢰도를 기반으로 광고 문의와 유료 제휴를 유도해 BM을 확보하는 것을 장기 목표로 설정했다.
단기 목표: 팔로워 1만 달성 (알고리즘 노출 임계점 진입, 참여율 상승 구간 확인)
장기 목표: 광고 문의 유입·유료 제휴 확보 (월 리드 수, 전환률, 채널 매출 기여로 검증)
초반 1만 달성 전까지는 업로드 볼륨이 곧 인터랙션 지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가설을 적용해 하루 3~4개의 콘텐츠를 올렸다. 뉴스 포맷은 참여도가 낮았지만, 몇 개의 유머가 알고리즘을 타며 반응이 폭발했고 이를 통해 단기 목표를 빠르게 달성할 수 있었다.
운영은 실전이다
늘 그렇지만, 운영은 고통스러운 실전이다. 실전에 대비하여 바로 적용 가능한 에디토리얼 원칙을 정립했다. 기존의 루틴 업무와 프로젝트가 멈춤 없이 돌아가는 상황이었기에, 리소스를 최소화하면서도 전체 방향성과 가이드를 견고히 잡아 팀의 강점이 해당 프로젝트에서 시너지를 내도록 설계했다.
원래 SNS채널을 담당하던 사업전략 팀의 콘텐츠 마케터와 매끄럽게 협업할 수 있도록 톤앤매너, 레이아웃 규칙, 크레딧 표기, 인용 출처, 업로드 타임라인을 문서화했다. 브랜딩 팀 내에서는 인스타그램 그룹 디엠 방을 만들어 실시간으로 재밌는 밈과 릴스를 공유했고, 제작 단계에서는 밈의 맥락, 저작권, 문화적 민감도를 반드시 체크했다.
뉴스 포맷은 속도, 정확성, 가독성의 교차점에 배치했다. 헤드라인은 1초 내 맥락 파악이 가능해야 하며, 썸네일은 스크롤 환경에서 1:1·4:5를 모두 튜닝했다. 카드당 정보량은 알고리즘의 체류 시간과 저장 행동을 고려했다.
뉴스의 속도전
뉴스는 컨텐츠 마케터와 함께 매일 아침 게임 웹진과 일반지 이슈를 스캐닝했다. 슬랙에 제보 채널을 개설하고 동료들의 제보를 받기도 했다.
LCK, 월즈, 스토브리그 시즌에는 속도전을 감수했다. 알림을 켜고, 야간에도 취재, 정리, 디자인을 반복했다. 이 시기에는 주 업무가 아님에도 타 매체보다 늦는 경우가 생기면 이상한 박탈감이 생겼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럴 때는 단순 속도를 만회하기보다 정보를 보강해 콘텐츠 밀도를 높이거나 더 깊게 취재했다. 이 기간만큼은 편집장처럼 움직였다. 소싱, 큐레이션, 헤드라인, 아트워크, 배포까지 한 사이클을 온전히 책임졌다.

웃기는 건 더 어렵다
유머 밈은 언어의 리듬과 게이머만의 포인트를 정확히 짚는 것이 관건이었다. 실제 게이머가 쓰는 은유와 반응 속도를 반영해야 했다. 다만 지나치게 마니악하면 진입장벽이 생기고, 과하게 대중화하면 재미가 사라진다. 균형이 필요했다.
나는 오피지지에 합류하기 전까지 게임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입사 후 롤을 배우고 이스포츠를 챙겨보며 ‘적당히 아는 정도’에 불과했기에 일부러 내 알고리즘을 게임 유머와 커뮤니티 언어로 채우고 꾸준히 노출되도록 세팅했다. 또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팀원들에게 검수를 요청했다. 때론 내 강점을 살려 영어권 밈이나 영화 대사를 초월 번역해 적용하거나, 실제 대사가 아닌 엉뚱한 자막을 덧입히는 스타일의 컨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유머 콘텐츠는 단연 많은 공유와 폭발적인 인터랙션을 기록했다. 게이머들이 ‘공감’을 기준으로 모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성과였다. 다만 나름 인터넷 고인물로서 자신이 있었는데도, 점점 정작 나 자신은 웃음이 나오지 않을 만큼 광대로서의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래도 팀원들과는 가볍게 주고받으며 의식적으로 즐기려 노력했던 것 같다. 특히 ‘공식 계정 맞냐’는 반응은 무언가 견고했던 벽을 깬 것 같아서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장단기 목표를 5개월 만에 달성했다
첫 달에 팔로워 만 명을 넘겼고, 세 달 만에 팔로워가 만 명가량 증가하여 만 6천 명을 돌파했다. 매주 한 개 이상의 포스트가 좋아요 1만을 넘겼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자발적 리액션이 발생했고, 알고리즘을 타고 비게이머 유저까지 확장되었다.
이후 첫 광고 문의가 들어왔다. 아직도 기억한다. 디아블로 시네마틱 라이브 콘서트의 홍보 게시물이었다. 이를 통해 처음으로 유상 콜라보 포맷을 설계했고, 마케터는 시장 단가를 급히 리서치해 광고료 테이블을 마련했다.
이 시기에는 대시보드로 팔로워, 도달, 공유, ER을 일 단위로 확인하며, 주간 공유를 통해 경영진에게 리포트하고, 액션-피드백 루프를 정립했다. 이후에는 업로드 주기를 완만하게 줄였음에도 팔로워 수는 꾸준히 늘어, 최종적으로 만칠천 명대를 기록했다.
브랜딩의 끝은 지표가 아니라 공감이었다

초반에 말했듯 인스타그램을 잡은 이유는 팔로워를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브랜드 메시지와 페르소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됐다’고 확신했던 순간은 대표적으로 위의 두 개의 게시물이 보여준 반응에서였다.
오피지지는 사이트 대문의 로고 플레이로 유명하다. 이 자산을 불특정 다수가 모인 외부 플랫폼에서, 칠가이 유행의 타이밍을 정확히 타고 풀어 높은 반응을 이끌어냈을 때 느꼈다. 광고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센스 있게 우리 브랜드를 자랑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했다는 감각. 그게 더 중요했다.
또 하나의 순간은 LCK 연말 시상식이었다. 오피지지는 한 해 가장 많이 검색된 선수를 뽑는 ‘서치킹’ 시상자로 참여했고, 우리가 개발한 캐릭터 IP로 특별 제작한 인형 트로피를 페이커에게 안겼다. 이 내용을 우리의 채널에서 뉴스처럼 담백하게 다뤘을 때,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희열이 있었다.
또한, 초기에는 유머 중심으로 오는 반응 탓에 정작 기획 컨셉인 ‘게임 매거진’으로서 자리잡지 못하던 문제도, 반응 수에 휘둘려 릴스 일변도로 가지 않고 뉴스 콘텐츠를 꾸준히 발행했더니, 그 결과 뉴스형 포스트의 반응이 점진적으로 상승했고, 1만 인터랙션을 넘긴 뉴스도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브랜딩의 궁극은 단순 지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맥락과 공감, 그리고 꾸준함에 닿아 있음을 확인했다.
디자이너에게 지표의 강점과 위험
디자이너가 지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다루면 장점이 분명하다. 시각과 내러티브의 결정을 성과 데이터와 연결해 학습 속도를 높인다.
다만 숫자가 방향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지표는 브랜딩의 목적을 보조할 뿐, 목적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브랜딩이 마케팅으로 환원된다. 나는 그 경계를 의식적으로 관리했다. 해야 한다면 하겠지만, 마케팅 전문가보다 정확히 판단하고 잘 할 수 있는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실험적이던 프로젝트의 임팩트가 점차 눈에 보이자, 초기에는 “가이드와 운영만 안정화해도 충분하다”던 목표가 팔로워와 인터랙션을 주 단위로 끌어올리라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도달의 풀과 전환의 풀은 다르다
그 상황에서 나는 콘텐츠 볼륨을 두세 배로 늘리거나 이벤트를 기획하며 숫자를 쫓지 않았다. 이 정도의 운영 체계를 세우고 가능성을 증명했다면, 다음 실험으로 넘어가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내부적인 설득에 많은 에너지를 들였다.
6개월차에는 팔로워 모으기를 뒤로하고, 인스타그램의 풀이 곧 구매력 있는 브랜드의 팬으로 치환될 수 있는가에 대해 검증하는 단계에 돌입했다.
IP 기반 굿즈와 이모티콘을 출시하며 인스타그램 팔로워에게 홍보했지만, 1만7천 규모가 곧장 매출 증가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유입의 목적과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정보 확산을 즐기는 이용자와 구매까지 이어지는 이용자는 동인이 다르다. 전자는 도달·인지·신뢰 자산을 키우는 풀이며, 여기서 팬심 퍼널로 전환되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또한 조용한 오피지지 유저보다, 댓글에서 친밀하게 인터랙션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우리와의 친밀도가 더 높고 그게 곧 구독 구매율로 이어지느냐. 그렇지 않다. SNS 팔로워는 파워가 숫자로 명확해 보이지만, 실제 유저보다 훨씬 말랑하고 일시적이다. 팔로워는 잠재고객이 아니고, 본질은 유저다. 이 지점을 분명히 인지한 뒤 채널별 역할을 재정의하고, 기대 지표를 분리해야 한다는 걸 체감했다.

숫자는 지나가고, 체계는 남는다
워낙 회사 내부에서도 관심을 많이 받았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오피지지를 퇴사하면서 “열심히 키운 계정 아깝지 않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았다. 하지만 회사의 채널은 내가 아닌 회사의 것이고, 애초에 오피지지라는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에 채널도 그만큼 성장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내게 인스타그램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기 때문에 아쉬움보다 배움이 더 선명했다.
반대로, “팔로워나 ER 같은 지표를 디자이너가 책임지는 게 맞느냐”는 질문에도 의문은 없었다. 오너십을 가졌다면 다양한 지표와 해석으로 결과를 소통하는 것까지가 업무의 완성이다. 물론 회사는 당장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내가 커리어에서 본질로 삼는 지표도 있다. 이럴 땐 두 층위를 분리해 관리하면 된다.
지금의 회사인 마이클에서도 빈 구간을 찾아 채널과 경험을 새로 설계한다. 목표를 설정하고 트래킹 지표를 붙이며, 브랜드의 감성과 철학을 잃지 않은 채 숫자로도 소통 가능한 구조를 만드려고 노력한다. 이 과정에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래도 이 고민을 알아주는 내부적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힘을 내서 달리는 것 같다.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꾸준히 “어떻게 행동하느냐”로 증명된다. 매출과 지표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이 가치를 설득하기는 때로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필요한 채널을 통해 그 행동을 반복적으로 시각화하고, 책임 있게 축적해 나간다.
브랜드 디자이너가 인스타그램을 잡은 이유는 단순하다. 방향을 증명할 장을 스스로 연다. 작은 승리를 쌓아 논리를 만든다. 그리고 팀이 이어서 달릴 수 있는 레일을 남긴다. 지금도 그 연장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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